
끝나는 여름과 자리를 지키는 나무 — 시간과 존재의 서정
여름은 끝난다. 뜨거웠던 날들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기억과 상실의 자리이다. 한편 어떤 나무는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 서서 계절을 흘려보낸다. 이성복의 그 여름의 끝과 김명인의 그 나무는 모두 시간과 존재의 문제를 다루는 서정시이지만, 시선의 방향이 다르다. 전자가 끝나 가는 시간을 붙잡으려는 회고의 시선이라면, 후자는 변치 않는 존재를 바라보는 응시의 시선이다.
2027 수능특강 2부 현대시 09강(p.106)은 이 두 작품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이 글에서는 두 작품의 주제와 표현 기법을 정리하고, 수능 출제 가능 관점을 분석한다.
작품 개요와 깊이 읽기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이성복(李晟馥, 1952~)은 경북 상주 출신의 시인으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77년 문학과지성에 추천되어 등단하였으며,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남해 금산(1986), 그 여름의 끝(1990), 호랑가시나무의 기억(1993) 등의 시집을 남겼다. 이성복의 시는 초기에는 현대 사회의 폭력성과 부조리를 충격적 이미지로 드러냈으나, 이후 서정성과 깊은 내면 탐색으로 나아갔다.
그 여름의 끝은 같은 제목의 시집(1990)의 표제작이다. 서두는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 한 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로 시작한다.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뜨거웠던 한 시절, 혹은 사랑하던 사람과의 시간을 함축하는 상징이며, 백일홍은 폭풍과 우박을 견디고 붉게 피어난 생명력을 상징한다. 결구의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라는 구절이 작품의 핵심 반전이다. 시련을 견딘 백일홍처럼, 화자의 절망도 마침내 끝난다는 역설적 긍정이 드러난다.
표현 기법에서는 경어체(~하였습니다, ~끝났습니다)의 고백적 어조와 폭풍·우박·불·피의 격정적 이미지가 핵심이다. 장난처럼이 두 번 반복되면서 격정의 이미지와 장난의 낯섦이 상징적 긴장을 만든다. 지적 현란함을 배제한 단순한 문체가 오히려 서정성을 고양한다. 1984년 프랑스 체류 이후 김소월·한용운·논어·주역에 심취한 사상적 전환 이후의 작품으로, 초기의 해체적 난해함에서 한국적 서정으로 회귀한 중기의 대표작이다.
그 나무 — 김명인

김명인(金明仁, 1946~)은 경북 울진 후포 출신의 시인으로, 1969년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동두천(1979), 머나먼 곳 스와니(1988), 바닷가의 장례(1997, 황현산 해설), 파문(2005) 등의 시집을 남겼다. 유년기에 아버지의 빚보증 실패로 가족이 흩어져 동두천 송천동 고아원에 맡겨진 체험이 시의 바탕에 흐르는 원체험이다. 바다와 길이라는 상징이 초기부터 후기까지 반복되며, 동두천 연작은 한국 현대시에서 변방의 민중적 삶을 형상화한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김달진문학상(1992), 소월시문학상(1992), 현대문학상(1999), 대산문학상(2005), 지훈상(2007) 등을 수상하였다.
그 나무는 벚꽃 가로를 따라가던 화자가, 다른 나무들과 달리 미처 꽃을 펼치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늦된 나무를 발견하고 그 모습에 이끌려 멈춰 서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그 나무는 시멘트 개울 한구석에 비틀린 뿌리를 감춰 놓고 앞줄의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다. 그러나 이 뒤처지고 병든 나무도 마침내 꽃불 성화를 들어 올린다. 화자는 이 봄 가기 전 저 나무도 푸릇한 잎새 매달까요? / 가난한 소지(燒紙) / 저 나무도 가지가지마다 지펴 올릴 수 있을까요?라는 의문문으로 늦된 나무에 대한 연민과 기원을 드러낸다.
표현 기법에서는 의문문·설의문의 머뭇거리는 어조와 자연물과 시적 자아의 동일시가 핵심이다. 화려한 벚꽃 가로와 시멘트 개울의 비틀린 뿌리가 대비되고, 앞줄 나무들과 그늘 속 반쯤 숨은 늦된 나무가 대비된다. 꽃불 성화, 가난한 소지(燒紙) 같은 종교적·제의적 이미지는 꽃을 피우는 행위를 성스러운 제의로 승화시킨다. 늦됨에 대한 연민이 자기 성찰로 이어지는 구조이며, 늦된 깨달음에도 결실이 있기를 바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
두 작품 비교 — 끝나는 시간과 머무는 존재
그 여름의 끝과 그 나무는 모두 자연(계절, 나무)을 매개로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서정시이다. 그러나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 다르다. 이성복은 시간의 흐름과 끝에 주목한다. 여름이 끝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며, 화자의 시선은 지나간 것을 향한 회고의 시선이다. 김명인은 시간의 축적과 지속에 주목한다. 나무는 같은 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견뎌 온 존재이며, 화자의 시선은 머물러 있는 것을 향한 응시의 시선이다.
두 작품은 모두 경어체를 사용하면서도 어조가 다르다. 이성복은 선언적 단언(~하였습니다, ~끝났습니다)으로 역설적 종결을 드러내고, 김명인은 의문형 머뭇거림(~까요?)으로 조심스러운 기원을 드러낸다. 두 작품 모두 시련이나 결핍을 견딘 식물(백일홍/늦된 나무)에 자기를 투영하지만, 이성복의 화자는 시련을 이미 지나온 자의 회고이고, 김명인의 화자는 아직 결실을 기다리는 자의 기원이다. 수능특강이 두 작품을 한 강에 배치한 것은, 자연을 매개로 한 서정이 시간의 흐름에 대한 회고와 변치 않는 존재에 대한 응시라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모습을 비교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기출 분석과 심화 학습
평가원 기출 경향과 출제 포인트
그 여름의 끝과 그 나무가 직접 출제된 평가원 기출은 2017~2026학년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물을 매개로 한 존재론적 서정은 수능 문학에서 반복 출제되는 영역이다.
이성복은 1980~90년대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 시인 가운데 한 명으로, 그의 시에서 반복 출제될 수 있는 포인트는 절제된 언어와 깊은 서정, 시간과 상실의 주제, 풍경과 내면의 교감이다. 김명인은 변방의 삶과 자연물을 통한 존재 성찰이라는 특유의 시 세계로 평가받으며, 잔잔한 관찰과 담담한 어조, 내면적 교감이 출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두 작품의 비교 구도는 보기 문항에 적합하다. 보기에서 자연을 매개로 한 서정이 시간의 흐름(흐름·상실)과 존재의 지속(머묾·견딤)이라는 두 축으로 전개된다는 분석틀이 제시될 수 있다. 각 작품이 어느 축에 속하는지, 어떤 이미지와 어조로 그 축을 구현하는지를 묻는 문항이 예상된다.
학술적 배경과 연계 학습
학술 연구로는 이성복 시의 변화 양상 소고: 그 여름의 끝에 나타난 연애시와 리듬을 중심으로(비평문학, DBpia)가 이 시집의 연애시 어법과 리듬을 분석하였고, 손화영의 김명인 시의 서사성에 대한 연구(KCI 등재)가 김명인 시의 서사적 특성을 조명하였다. 이성복은 1980년대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전환점에 놓이는 시인이다. 초기의 충격적 이미지즘에서 후기의 깊은 서정으로 나아간 궤적은 한국 현대시가 사회 비판에서 내면 탐색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김명인은 변방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한국 현대시의 지평을 확장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두 작품을 함께 읽으면 1980~90년대 한국 서정시가 시간과 존재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비교할 수 있다. 같은 계열 작품으로 박재삼·이형기 등 서정시 계열과 연계 학습하면 효과적이다.
핵심 정리 & 학습 팁
핵심 키워드 정리
그 여름의 끝 — 갈래: 자유시, 서정시 | 작가: 이성복(1952~), 1977년 등단,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 | 발표: 1990년 같은 제목 시집 표제작 | 주제: 끝나 가는 여름의 풍경과 상실·그리움 | 핵심 기법: 절제된 서정, 풍경과 내면의 교감, 상실의 이미지 | 시적 계보: 초기 충격적 이미지즘 → 후기 깊은 서정
그 나무 — 갈래: 자유시, 서정시 | 작가: 김명인(1946~),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동두천(1979) | 주제: 오래 자리를 지킨 나무를 통해 본 견딤과 존재의 의미 | 핵심 기법: 자연물의 의인화, 담담한 관찰, 내면적 교감 | 시적 특징: 변방의 삶, 잔잔한 관찰, 존재론적 깊이
수능 대비 체크포인트
1. 두 작품의 시선 방향 차이를 파악해야 한다. 이성복은 끝나 가는 것(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회고의 시선이고, 김명인은 머물러 있는 것(시간의 축적)을 바라보는 응시의 시선이다. 이 방향의 차이가 비교 문항의 핵심축이다.
2. 자연(여름·나무)과 화자 내면의 교감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두 작품 모두 자연이 화자의 정서를 환기하는 매개이지만, 여름은 시간의 상징이고 나무는 지속의 상징이다.
3. 이성복 시의 후기 서정을 이해해야 한다. 초기의 충격적 이미지즘(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과 달리 후기에는 부드럽고 절제된 서정으로 이행하였다. 그 여름의 끝은 이 후기 세계의 대표작이다.
4. 김명인 시의 특징(변방·자연·담담한 관찰)을 정리해야 한다. 동두천 연작으로 대표되는 변방의 삶에 대한 관심, 자연물을 통한 존재 성찰이 그의 시적 방법이다.
5. 수능특강 2부 현대시 09강(p.106)의 두 작품을 읽은 뒤, 자연의 성격(계절=흐름 vs 나무=지속), 시선의 방향(회고 vs 응시), 정서의 결(상실 vs 견딤)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정리하면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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